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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헌 목록 〉14. 14世 〉42. <부정공>경은공휘유항묘갈명(耕隱公諱有恒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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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부정공>진사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공휘이려묘표(進士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公諱爾呂墓表)
進士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公諱爾呂墓表 公淳昌人修行以孝友爲本而統以諸美克有標樹少失恃老益哀慕考護軍公晩歲里居就養彌虔谷多人所難及痛外翁洪公命亨過難立殣祭必慤愴語及雪涕其於弟妹親表各盡篤義恩愛亡間處巳儉約發言簡重矜莊自持人莫敢慢雅有識慮先輩名公見推以國器早登司馬累擬蔭調年五十一 肅宗壬申卒其世曰府君元弼右尹堧爲祖曾而護軍諱聖耈考娶郡守淸州李從儉女寔爲公內助婦德孔彰與公同年生後於公廿四年卒有四女歸林耆金應豪朴弼勳李莘而無丈夫子子兄子泰夏承旨命臣兵使虎臣朴命升妻其出也公以命臣施恩 贈左承旨配淑夫人公諱爾呂字重叔葬交河靑巖里配附焉公抱才不遂又限以中身永爲知友嗟傷乃有二好孫以文以武並顯于朝方進進未己不于其躬于其後以其徵也夫 龍仁 李宜顯 撰 진사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공휘이려묘표(進士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公諱爾呂墓表) 공은 순창인으로 효도와 우애로써 수신행세(修身行世)의 근본을 삼고 모든 아름다운 덕을 갖추어 능히 모범이 되었다。 젊어서 어머님을 잃은 것을 종신(終身)토록 깊이 애모(哀慕)하였고 아버지 호군공(護軍公)이 만년에 시골로 가시어 우거(寓居)하시니 나아가서 봉양을 더욱 공경히 하여 다른 사람은 이에 전혀 미치지 못할 정도이었다。 외조부 홍 명형(洪命亨) 공이 난리를 만나 전장에서 돌아가신 것을 슬퍼하여 제사를 지냄에 정성을 다하였는데 슬픔이 복받쳐 말문이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었다。 그제매와 친족이나 외척(親表)에 차이 없이 은애(恩愛)하여 각기 두터운 의리를 다하고 몸을 검소하게 가지며 말은 간결묵중(簡潔默重)하고 씩씩하게 처신하니 남이 감히 침범치 못하였고 식견이 우아하니 선배와 명공이 보고 국가의 동량(棟樑)이라 장허(獎許)하였다。 일찍 생원시에 올라 여러 번 음사(蔭仕)를 받고 숙종 임신(一六九二)년에 향년 五十一세로 별세하였다。 고(考)는 호군 휘(諱) 성구(聖耈)요 비는 군수 청주 이종검의 따님으로 공의 내조가 되어 부덕이 심히 밝았고 공과 동갑이었는데 공보다 二十四년 뒤에 별세하였다。 四녀가 있어 임기(林耆)·김 응호(金應豪)·박 필훈(朴弼勳)·이 신(李莘)에 출가하였고 아들이 없어 그 형님의 아들 태하(泰夏)를 양자로 하였는데 승지 명신(命臣) 병사(兵使) 호신(虎臣)의 영귀로써 공은 좌승지 배는 숙부인의 은증을 받았다。 공의 휘는 이여(爾呂)이며 자는 중숙(重叔)이고 교하(交河) 청암리(青巖里)에 안장하고 배는 이에 부장하였다。 공이 포부를 펴보지 못하고 중년에 별세하니 지우(知友)간에 무척이나 슬퍼하고 한탄한 바 되었으나 이에 두 어진 손자가 있어 문과 무로써 함께 조정에 나가 앞길이 창창하게 되었다。 이 모두가 공이 쌓은 덕의 덕분이 아니면 그 후손의 앞날이 이처럼 넓고 탄탄할 수가 있겠는가。 龍仁 李宜顯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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